[스포츠 타타라타] 목숨을 걸고 - 이토 미마와 조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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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조치훈의 휠체어 대국. 오른쪽은 그의 좌우명인 '목숨을 걸고'를 새긴 도자기 필통.


# 일본 바둑이 세계 최고였던 시절, 조치훈(62)은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최고의 기사가 됐다. 대삼관을 4회나 달성하며 레전드가 된 것이다. 큰 성공을 위해 외국땅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젊었을 때부터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라고 말하곤 했다. 이는 ‘죽음의 미학’이 발달한 일본에서도 지나치다는 거부감을 불렀다. 그런데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는 영화 같은 일이 실제 벌어졌다. 1986년 1월 기성전 결승 1국을 열흘 앞두고 조치훈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치 25주의 중상. 당연히 대국은 취소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조치훈은 “머리와 오른팔은 멀쩡하다”며 대국에 나섰다. 1국을 불참으로 실격패한 후, 2국부터 온 몸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바둑을 뒀다. 고바야시 고이치에게 2승4패로 패했지만 그 유명한 ‘휠체어 대국’은 역사에 남았다. 그리고 이후 조치훈은 더 큰 성공을 거뒀다.

# 지난 5월 스웨덴 할름스타드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단체전) 여자 결승 1경기. 일본의 이토 미마(18)는 류스원(중국)과의 대결에서 게임스코어 3-2(11-9 8-11 5-11 11-8 12-10)로 승리했다. 세부 점수가 말해주듯 엄청난 접전에 명승부였다. 이후 내리 3경기를 지면서 일본은 은메달에 그쳤지만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강자 중 한 명을 상대한 이토의 경기력은 대단했다. “어제 이토 미마 눈빛 보셨어요. 엄청난 집중력이에요. 탁구는 그렇게 쳐야 해요. 마치 목숨을 건 듯이요.” 다음날 만난 금천시청의 추교성 감독의 말이다. 이토 미마는 이어 6월 자국에서 열린 일본오픈에서도 중국의 차세대 탁구여왕 후보인 첸싱통(세계 10위)-왕만위(5위)를 차례로 꺾으며 정상에 올랐다.

# 지난 주 세계 탁구계에 ‘지각변동’(월간탁구의 표현)이 일어났다. ‘이토 쇼크(shock)’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토가 스웨덴 오픈에서 탁구 최강 중국이 자랑하는 1~3장을 꺾고 여자단식에 우승했기 때문이다. 마치 도장깨기를 하듯 내용도 흥미로웠다. 무림 최강문파의 본진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순서대로 고수들을 모두 제압하는 무협스토리 같았다. 이토는 32강에서 중국의 장치앙을 4-1로 가볍게 일축했고, 16강에서는 중국 국가대표 출신으로 현재 싱가포르의 에이스인 펑티안웨이(11위)에게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8강부터가 하이라이트. 세계 1위를 돌아가면서 차지해온 중국의 3인방을 류스원(6위), 딩닝(2위), 주위링(1위)를 차례로 제압했다. 역전승이 많아 경기내용도 흥미만점이었다. 압도적인 백핸드 스피드, 핌플 속공, 창의적인 플레이, 그리고 무엇보다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의 집중력으로 ‘탁구장성’을 무너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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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미마의 경기는 지켜보기만 하면 그가 얼마나 집중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사진=국제탁구연맹]


# 아무리 최강이라고 해도 중국탁구도 가끔 진다. 그리고 중국은 해당선수를 금세 분석해 다음 대회에서는 바로 잠재워버린다. 이게 현 세계탁구의 문법이다. 그런데 이토 미마처럼 한 대회에서 최강자를 줄줄이 꺾고, 또 같은 해에 중국의 기대주는 물론이고 세계랭킹 톱10에 있는 최강자들까지 한 선수가 모두 격파한 것은 근래에 없던 일이다. 기술적으로도 5월 스웨덴의 충격패배 이후 중국 여자탁구가 이토 미마 연구에 열을 올렸던 까닭에 더 이상 이토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토 쇼크는 더 이상 이변이 아니라 실력인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토가 아직 어리다는 점이다. 2000년 10월 21일 생으로 이제 갓 만 18세를 넘겼을 뿐이다(한국으로 고3). 이토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젊은’ 여자탁구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 “2020년 도쿄 올림픽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은퇴하고 싶습니다.”(이토)
“아무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그렇지 2020년이면 만 스무 살인데 무슨 은퇴인가?”
“운동이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혼신의 힘을 다해 탁구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탁구에 쏟아붓고 있죠.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면 쉬고 싶습니다.”(이토)
이는 얼마전 이토 미마가 은사인 오광헌 감독(보람할렐루야탁구단)과 나눈 대화다. 오 감독은 한국의 무명탁구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국가대표팀 지도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토를 직접 가르쳤고, 지금도 이토는 한국에 올 때마다 오광헌 감독을 찾는다. 그러니 위 대화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 20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은퇴. 얼마나 열심히 해야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 이토가 정말 잘하고, 일본탁구가 부럽다. 이 진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토의 탁구는 조치훈의 바둑과 닮았다. 목숨을 걸고 탁구를 치는 듯하다. 이토 스스로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늘 얘기한다. 이번 스웨덴 오픈에서도 “점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계속해서 한 번에 한 점씩 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 자신을 믿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운동이든, 공부든, 사업이든 이런 정신자세라면 실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이 가치를 둔 일에 ‘목숨을 걸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성공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삶의 축복이다. 그리고 역사의 큰일은 스포츠든 뭐든 목숨을 거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이토의 탁구에서 배울 점은 바로 이점이다. 구시대적인 ‘헝그리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나중에 후회가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혹시 요즘 한국탁구, 아니 한국스포츠는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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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오픈 시상식에서 셀카 촬영을 하고 있는 이토 미마. 경기장에서 지독한 승부사지만, 또래 평범한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다. [사진=국제탁구연맹]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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